큰 분노나 작은 분노나 분노는 역시 분노일 뿐이다. 그것이 중생의 과보를 어리석음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되는 삼독의 하나이니 이 분노에 끌려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생사의 원인이 되는 삼독인 탐, 진, 치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을 알아야 생사의 밧줄을 끊고 영원히 죽지 않는 자유를 누릴 것이 아닌가.
‘나는 나무를 사랑하는데 왜 저 사람들은 나무를 훼손하는가?’ 라는 것은 자기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면 자기는 없어진다. 아니, 없어진 것도 모른다. 마치 돌이 되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생각만 생기지 않는다면 자존심이 상할 일도 없고 남의 것을 탐낼 일도 없으며 분노가 일어날 일도 없다. 그렇다고 죽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윤회란 어떤 육신의 모습이 되었든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받게 되는 법칙이기 때문이다. 만약 분노에 의하여 자살을 했다면 죽음을 택할 정도의 극심한 분노가 마지막의 기억이 되므로 다시 태어날 때는 그 분노로 근본을 삼게 될 것이니, 이것은 오히려 크게 자기를 추락시키는 일이 되고 만다. 본래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분노는 생각이고 생각은 정신이며, 정신은 물질이 아니므로 칼이든 불이든 어느 것으로도 망가트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시 죽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큰 구름도 결국은 사라지고 쾌청한 하늘이 되지만 반드시 머지않아 다시 생겨난다. 그러므로 구름이 완전히 사라지는 법칙이란 있을 수 없듯이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 죽는다는 것은 잠시 잠이 드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어디에도 죽음은 없다. 영원히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반복한다면 이것은 해가 뜬다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진다고 말해야 하는가. 단지 윤회하는 것이다. 끝없는 반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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